미안함이 가득한 형의 여행 일기
이번 제주도 여행이 기다려지고, 설렜던 이유는 ‘제주’도 아니고, ‘여행’도 아니고 ‘동생’과 함께하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으로 인해 친구보다는 동생과 방과 후의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가끔 뒷산에 올라가기도 했고, 동생 결혼 전에 1년 정도 같이 살았던 적도 있었다. 지나고 보니 그 1년이 참 아쉽게 느껴졌다.
회사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동생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아쉬움이다. 당시에는 이렇게 오랜 시간 단둘이 지내는 시간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 기대가 되었다. 동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4박 5일 동안 우리는 제주도의 자연을 만끽했다. 등산에 재미를 붙인 녀석 때문에 비행기에 내린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오름과 한라산을 올랐다. 허리 통증 이슈로 오르지 못한 윗세오름을 제외하면 9개의 오름을 올랐다. (동생은 10개) 한라산은 가장 힘든 코스인 관음사 코스를 올랐으니, 등산에 미친(긍정) 형제라 불러도 될만한 여행이었다. 물론 오름만 오른 건 아니었다. 일출을 보기 위해 광치기 해변을 산책하기도 했고, 제주도 핫 플레이스인 협재와 애월의 해변도 거닐었다. 산이고 바다고 글 쓰는 지금 그때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 놓고 보니 너무 행복했던 시간이었음을, 자연스레 올라가는 입가의 미소로 증명할 수 있다.
나도 제주도에서 하고 싶은 게 있었다. 어느 정도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했다. 본태 박물관에서 느긋하게 전시를 보고, 사진 작업을 위해 잠깐의 시간을 내기도 했으니까. 그 외의 시간은 동생 위주의 일정이었다. 형으로서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이렇게라도 동생이 자유롭게 지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만으로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행 전에는 둘의 다정한 사진을 찍고 싶어 삼각대도 챙겨갔다. 막상 여행 기간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열심히 산을 오르고, 정상에서는 바다와 한라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과 사람의 흔적이 묻지 않은, 푸르고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있었으니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서울의 일상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천국과도 같았달까? 둘이서 천국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입에서 꺼내어 맴돌았는지 셀 수가 없다. 제주도 무새, 천국 무새가 되어버렸달까? 이렇게 좋은 곳에 동생과 함께 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니, 더 이상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이렇게 멋진 곳을 다양하게 담기 위해 이번에는 드론을 챙겨갔다. 다정한 사진을 찍지 못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말이다. 오름에 올라 멋진 풍경을 찍고, 광치기 해변에서 성산일출봉과 함께 일출의 모습도 찍었다. 중요한 건 하늘에 떠 있는 카메라로 형제의 사진을 찍어 본 것 특이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다정한 포즈를 취하지 않았지만, 셀카를 제외하면 유일한 둘만의 사진이다.
하늘에서 바라본 형제는 어느새 40대가 되어버렸다. 여전히 초등학교 시절 장난치며 놀던 모습이 생생한데 말이다. 마음은 어렸을 적 집에서 달고나 해먹겠다고 국자를 태워 먹은 그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말이다. 그래도 조금은 성숙하긴 했다. 내가 아니라 결혼하고, 벌써 초등학생 딸이 있는 동생에 한해서. 안타까울 수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지난주 수요일, 서울로 돌아왔다.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시간이 아득히 지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너무 좋았기 때문일까, 좋은 기억이 이렇게 빨리 희미해지는 것은 슬프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추억이겠지만 말이다.
용돈을 모아서 온 동생이 안쓰러워 다음번에는 내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전혀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해야겠다. 빠듯한 일상이지만 어떻게든 다시 시간을 내어 보기로 다짐한다. 언젠가, 아니 50살 전에는 가능하도록 힘써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