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못 하는 맛집들이여
마지막 이별이 벌써 1년도 훌쩍 넘었다. (혼자) 많은 일을 경험하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그사이 추억이 되어버렸다. 지나고 보면 그때 왜 그랬을까? 조금 더 정신을 차리고 내 할 일을 했었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말해도 가장 열심히 운동했고, 독서와 글 쓰기를 손에 놓지 않은 거 보면 스스로가 신기하다.
이별하고 나면 가장 슬픈 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이겠지만, 지금 돌아보면 함께 갔던 좋은 곳을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보면 웃기기도 하고, 인간미가 없어 보이지만, 남는 건 경험과 그에 따른 감정뿐이니까.
요즘 들어 그녀와 함께 갔던 맛집 생각이 많이 난다. 덕분에 좋은 곳을 많이 알게 되어 네이버 지도에 유산처럼 남아 있지만, 이별 후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괜히 생각날까 봐, 슬퍼질까? 보다는 핑계였지만 이제는 당당히? 갈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 생긴 것 같다.
크림 아몬드가 맛있었던 공덕의 경의선 숲길 옆에 있던 작은 카페, 둘 이상이 가야 주문할 수 있는 납작 우동이 가장 그립다. 내가 가지 못하니 주변 사람에게 가라고 등 떠밀듯 추천하지만, 후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정말 맛있는데, 내가 추천한다는 건 최고 중의 최고인 것만 해주는데, 제발 좀 가서 먹어줘. 소감을 전해줘. 라는 마음으로 비단 주머니에서 꺼내주는데 말이다.
너나 가라고 할 수 있지만, 크림 아몬드 카페는 그녀가 자주 가는 곳이고, 행여나 마주칠까? 두려워 가지 못한다. 파트너가 생긴 후에 가는 것도 뭔가 좀 웃기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더 웃긴 것 같다. 유치하고. 유치한 사람이긴 하지만.
이별 후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건 그녀의 흔적을 찾지 않은 것이다. 새벽에 ‘자니?’ 하며 문자를 보낸 적도 없고, 인스타를 염탐하지도 않았다. 그런 면에서는 나를 칭찬해. 나 자제력이 있는 사람이구나?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만남과 이별은 반복된 일상에 작은 에피소드일 수도 있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다. 상대에 따라 몰랐던 나를 세상에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평소에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이런 애교가 있다고? 상대를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도 그렇게 열심히 하지 하는 생각 등 말이다. 관계란 그런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면서 나를 마주하는 일.
조만간 새로운 관계 맺기가 시작될 수도 있다. 시작하지 않았지만 시작된 관계. 만남이 이어질 수도 있고, 첫 만남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설레는 일이다. 흔히 다른 우주를 만나는 일이라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이제는 연인보다 인연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좋은 친구라는 이름의 인연 말이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같이 좋아하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같은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누고, 글을 쓰고, 함께 땀 흘려 운동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맛집을 함께 갈 수 있는 사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다른 조건보다 훨씬 까다로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인연의 필수 요소가 하나씩 늘어나는 느낌을 숨길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의미 없는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으니까.